최재혁

최재혁은 기명절지도와 책가도의 형식을 차용한 정물화를 선보인다. 작가는 2011년부터 정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2014년부터 현재까지 기명절지도의 형식과 구도를 연구하여 이를 유화에 접목해오고 있다. 매체가 유화임에도 불구하고 서구 정물화가 아닌 동양 정물화 형식을 도입한 이유는, 서구 정물화가 삶의 무상함을 주제로 하는데 반해, 동양 정물화는 부귀, 장수, 자손번영 등과 같은 소망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작가는 정물화라는 형식을 통해 세속적인 삶의 가치를 긍정하고자 한다.

 

작가는 사물이 가치를 획득하고 전유되는 과정을 '마음의 사건'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정물화에서 각 모티프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지녔던 것도 이러한 마음의 사건에서 기인한다. 'Still Life' 시리즈에서 모티프가 되는 사물들은 대부분 과거의 정물들이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차는 과거의 '쓸모'를 비워내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세월의 때와 녹을 벗겨내고 두 모티프를 평면에 함께 소환시킨다. 과거를 '너머' 현재에 위치한 정물은 전형적인 가치와 의미 '너머'에 있는 수많은 마음의 사건을 잉태하고 있다. 작가는 관객들이 작품과 만나 저마다 마음의 사건을 발생시키고, 정물들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를 바란다.

 

미학 유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