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승오는 젊은 시절에 각광을 받은 것도, 가능성 있는 작가 주목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어딘지 좀 특별한 작가로서, 그의 그림은 필자가 보기에 한국회화사상 전례가 없는 독창적인 그림이다. 마치 2차원의 평면 속에 3차원의 공간까지 곁들여 있는 것 같으며, 확실히 새로운 틀이라는 신선한 방법으로 창작된 그림이라 생각된다.
최근에는 붓이 아닌 다양한 종이를 재료로 하여 자신의 손을 사용해서 다양한 형태로 표현해 내고 있다. 때로는 고흐나 뒤샹과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대표적인 작품을 리메이크(remake)하여 새로운 회화적 패턴을 구축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사성 있는 인물이나 메시지 강한 소재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 시대를 대변할만한 또 다른 회화적 스타일로 주목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런 부류의 작품들은 많은 노력의 소산으로서 그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접한 조형적 영향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부친의 인쇄소 안에 수북이 쌓여있는 달력 등 여러 형태의 종이 더미는 놀이처럼 자연스럽고도 색다른 경험을 갖게 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종이 속에서의 놀이와 느낌이 작가 이승오의 오늘의 작품으로 창출되었다. 따라서 이승오의 작품에는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독특한 감성과 느낌 및 감흥 등이 배어 있으며, 다양한 종이에 대한 느낌이 하나의 화면 속에 오롯이 함축되어 있다.
이승오는 시사적이거나 사회의 이슈거리가 될 만한 고흐의 해바라기나 마릴린 먼로 등의 여러 이미지를 차용하여 마치 감성을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몰아가듯 내면을 독특한 조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붓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붓으로 그리는 이상의 효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붓 이상의 효과를 느끼게 하는 그의 독특한 조형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재미있는 시각적인 경험과 신비로움, 즐거움 등을 줄 수 있다. 그는 붓을 사용하지 않고 종이의 측면으로 붓의 터치 같은 독특하고도 독창적인 형태감을 만들어낸다. 이는 조형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과 노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라 하겠다.
작가는 대학 시절부터 인사동의 여러 화랑을 기성 작가 못지않게 두루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으며, 자신의 작업세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어려서부터의 독특한 조형 경험과 내면의 감흥을 조형적으로 이미지화시켜 가며 예술성을 구축해 온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철저하게 내면에 흐르는 감각과 미적 본성에 의한 조형성을, 붓이 아닌 손에 의존하여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작가의 손이 뿜어내는 조형적 아우라(aura)는 무척이나 조형적이면서도 감동적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묘사를 바탕으로 하는 구상 회화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으로서,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의 공존을 이루고, 2차원적이면서도 3차원의 형식미를 내재하고 있으며, 붓으로 그린 이상의 효과와 아름다움을 창출해낸다. 이는 작가가 종이와 손을 이용하여 자연적· 본질적 느낌을 주는 형태와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미적 에너지를 잘 드러내는 형상성을 감각적으로 함축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처럼 붓이나 다른 연장이 아닌 손을 활용하여 조형과 회화성을 새롭게 극대화시키기에 특히 관심이 많은 그의 작업은 매우 한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이지만 서양의 그 어떤 회화보다도 더 강렬하며 인상적이고 전달력이 강하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단지 서양적인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동안 민화처럼 우리 정서가 깔려있는 은근하면서도 깊은 조형성을 심도 있게 탐닉한 결과일 것이다. 그는 이처럼 한때 민화의 색과 선의 느낌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손으로 직접 종이를 쌓아가며 민화의 은근하면서도 투박한 맛을 담아내었다. 이는 작가가 민화뿐만 아니라 동양화와 한국화에도 많은 관심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더 나아가 단순히 회화를 그리려하기보다는 우리의 정서가 느껴지는 조형성을 찾고자 하였기에 깊은 맛이 흐르는 조형성이 구축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회화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미지와 본질을 찾고자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 속성을 표출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이 고민하고 사색해왔으며, 조형성 탐구에 대해 대단히 진지한 자세를 견지해 왔다. 이승오는 한국인의 미적 감흥과 속성을 시지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구현시키고 작품화하기 위해 많이 생각하며 과감하게 표현한 작가이다. 그러면서도 표현의 틀 자체를 동양적인 것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서양적인 조형에 기인하면서도 우리의 정서를 담은 흥미로운 작업을 전개시켰다.
따라서 이승오의 작품에 보이는, 종이의 옆면에서 주로 형성되는 지층 내지는 물결 모양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자연적인 형태들은 단순히 고흐의 정물이나 뒤샹의 변기, 마릴린 먼로 혹은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우리 시대 잔상들의 형태들이 아니다. 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삶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드러난 또 다른 조형적 모습이자 이미지라 하겠다. 이 이미지는 곧 세월의 흔적 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조형미 그 자체라 할만하다.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느껴왔던 감흥이나 혹은 평소에 생각해 오던 어떤 것, 다시 말해 자신의 이상이나 꿈 또는 즐거웠던 추억 및 소중하게 간직해 온 어떤 것들이 과거의 조형적인 형태를 차용해 새롭게 리메이크되면서 더 흥미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게 되었다.
이 흥미로움은 특히 형식적인 측면에서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여러 층을 이루듯이 설치된 종이와 각각 다른 색상들은 매우 독자적이면서도 독특한 시각적인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일루젼의 환영이나 착상 같은 기묘한 색의 선율들이 다채롭고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환상적인 스펙트럼 같은 형국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승오의 작업은 서양의 유명 작가의 그림이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내용을 단순하게 차용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종이를 재료로 하여 펼쳐지는 변화 그리고 색의 확산과 환원 같은 조화는 마치 현대인의 꿈과 이상을 담아내는 또 다른 한국인의 조형 표현의 방법으로서 아름다움의 극치로 여겨진다. 여기에서는 크고 작은 꿈과 이상,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애정, 과거에 대한 추억 등이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색층으로 녹녹하게 드러나고 있다.
장준석(미술평론가, 한국미술비평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