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들은 엄연히 말하자면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진행했던 스트라이프 작업의 시즌 2이다. 추상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색을 주제로 끊임없이 작업해 온 나는 색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표현들을 지속해왔다.


과연 나는 왜 그런 컬러들을 지속적으로 표현해왔는가 하는 문제 제기를 스스로에게 해본다.

스트라이프 초기 작업에서는 색과 색이 수직적 형태로 만나 이루어내는 강렬한 발산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각각의 색채가 만나 생성된 그 경계는 미묘하고도 다양한 색의 변조로, 이질적 세계가 생생한 역동성을 느끼게 하였다.

 

이번 스트라이프 작업이 그전의 작업에서 변화한 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첫째는 색채에 질감을 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오일 물감을 묽게 만들어 플랫한 표면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캔버스 위에 튜브를 직접 짜서 긋기도 하며 스퀴지나 여러 가지 다른 도구들을 이용하여 물감 덩어리들의 질감을 서로 다르게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물감의 밀도와 속도, 방향의 규칙성을 작품마다 변화무쌍하게 표현해 봄으로써 회화의 본질적인 면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둘째는 나의 작업들에 시공간의 응축과 함축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내 작업은 무수히 많은 컬러들의 조합으로 인해 이뤄지는데 그것은 거의 수평적 형태를 이룬다. 또 그 형태는 직선에 거의 가까우며 시즌 1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기억 속의 풍경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때론 영화나 여행 중 인상 깊게 보았던 풍경이나 어릴 적 서울에 상경해 처음 보았던 이색적인 도시의 색채까지도 문득 떠오르게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작고한,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요리사 베르나르 로와조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음식은 기억이다 - 어릴 적 산이나 들에서 뛰어놀다가 따먹은 열매의 맛이나 엄마의 정성이 담긴 음식의 맛은 그 후 수십 년이 지나서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고 하였듯이 나에게 그러한 풍경들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으로서 인식되기보다는 특정한 색채로서 대체된다. 이처럼 대체불가능한, 회화 속 색의 본질을 탐구하고 표현하고자 나는 오늘도 캔버스에 색이라는 매개체를 핑계로 기억 속 여행을 떠난다.


-국대호 작가노트 "스트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