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의 색 쓸기 - 노정란의 근작


티베트의 가장 높고 신성한 곳에서는 경전을 적은 오색 깃발(룽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티베트인들은 깃발이 흔들리며 내는 바람소리마저도 경전을 읽는 소리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순수한 영혼을 룽다에 실어 신과 교감하고 자연과 진정으로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마치 티베트인들이 바람을 통해 신(자연)과의 교신을 소망하듯, 노정란 역시 무위의 색 쓸기 작업을 통해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쓸기'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화면을 빗자루로 쓸어내면서 수십 결의 색을 남긴다. 캔버스나 나무 패널에 밑 색을 칠하고 다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새로운 색을 그 위에 부어 쓸기도 하고, 밑 색이 반쯤 말랐을 때 다른 색으로 쓸기도 하며, 여러 가지 색을 동시에 붓고 그 위를 쓸어내기도 한다. 무작위로 수십 번 쓸어낸 색들은 밑에 깔려있는 색들과 구분되어 홀로 존재하기도 하고 서로 융화되기도 하여 화면 전체에 진한 울림을 발산해낸다.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겹겹의 띠로 구성된 형상이 드러날 뿐이지만, 무수하게 변주되는 색채는 화면에 에너지를 충만하게 하여 보는 이의 심층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그러나 그 에너지에는 거칠지만 부드럽고 무덤덤하나 따뜻한 슬픔의 감성이 공존한다. 겹겹이 쌓인 빗질의 결과 결 사이로 배어나는 색의 잔상들은 저녁 무렵의 노을을 드러내는가 하면 적막한 새벽의 기운이 스며있기도 하고, 풍랑이 일고 난 후 잔잔해진 바다 물결의 선율이 들리기도 하며, 암벽 사이로 단풍이 물들어 있는 가을 산의 정취가 감지되기도 한다. 또한 그 잔상들은 마침내 누적된 시간의 지층으로 환원되어 세월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처럼 작가의 작품에는 작가가 지나온 삶의 질곡과 함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사색으로 깊게 침잠된 작가 내면의 깊은 숨결이 담겨져 있다. 작가의 작품 속 색채는 평론가 오광수가 말하는 대로 "쓸기의 행위 속에 자신을 망각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순응된 감정을 은밀히 드러내는 자국"이라 할 수 있다. 색을 쓸고 노는 듯한 작가의 행위는 결국 자기성찰의 한 과정인 셈이다.


작가의 최근 <색 놀이- 쓸기> 연작은 보다 장엄한 기운이 느껴지며 자연에 대한 관조적 탐미의 폭이 더욱 깊어 보인다. 수없이 쓸어나간 화면 위의 색채는 더욱 농후해지고, 마치 인간의 내부에 켜켜이 쌓인 고뇌와 삶의 흔적들이 쓸려 나간 듯 원숙함이 물씬 풍겨난다. 작가는 인위와 가식을 벗어나, 표층적 이미지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뒤에 남겨진 색의 여운을 포착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형태가 없다"는 노자(老子)의 말처럼 작가는 색과 색의 틈새로 드러난 결, 그리고 그 사이의 경계를 조심스럽게 오고 가는 영혼의 교감을 통해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무無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작품 속의 색들은 '색 쓸기'를 통해 살아서 움직이며, 각자의 소리와 빛을 발한다. 비로소 작가는 진정 자유로워지며 삶의 순수성을 되찾는다. 그리고 마치 룽다의 경전이 바람을 타고 전파되듯이 작가 내면의 빛과 어우러진 각자의 색들은 화면 밖으로 퍼져나가 자연의 영원한 생명력을 부여하고, 관객들에게 자연의 섭리와 삶의 참 뜻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노정란은 앞으로 자신의 작업에서 색 농사를 짓겠다고 한다. 농부가 흙을 갈아 아름다운 결을 만들고, 씨를 심어 생명을 키워내듯 작가 또한 화면에 색을 갈아 색의 씨를 심고 농사를 지어 그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농사는 인간이 자연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지극히 위대한 행위이다. 만물을 창조한 절대자처럼 작가는 색 농사를 통해 열매를 창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정란의 색은 숭고하다.

신소영 / 전시기획자,표갤러리 전시도록,2009